1865년 철강업을 경영하기 시작하였고 72년 홈스테드제강소를 건설하였다. 1870년대부터 미국 산업계에 일기 시작한 기업합동의 붐을 타고, 피츠버그의 제강소를 중심으로 하는 석탄 ·철광석 ·광석 운반용 철도 ·선박 등에 걸치는 하나의 대철강 트러스트를 형성하였다.
1892년에는 카네기철강회사(뒤에 카네기회사로 개칭)를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로서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였다. 1901년 카네기는 금융자본가인 모건(J.P.Morgan)과 함께 주요 철강회사 12개를 통합해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는 'US스틸'회사를 탄생시켰다. 철강왕으로 부를 쌓은 그는 만년에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교육과 문화사업에 전념했다. 1898년에 그는 뉴욕 최대의 공연장인 '카네기홀'에 출자했으며, 1900년에는 카네기 공과대학을 설립하는데 거액을 기부했다. (카네기공과대학은 1967년 멜론연구소와 병합하여 카네기멜론대학으로 개칭) 뉴욕 카네기재단, 워싱턴 카네기협회, 카네기 교육진흥재단 등을 포괄하는 카네기재단을 설립해 연구와 문화 사업을 지원했다. 1919년 철강을 기반으로 모은 수억달러의 재산을 말년에 사회에 환원한 카네기는 84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감했다. |
업적
스코틀랜드 출생. 수직공(手織工)의 아들로 태어나, 1848년 가족과 함께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州) 앨러게니(지금의 피츠버그)로 이주하였다. 어려서부터 방적공 ·기관조수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의 여러 직업에 종사하다가, 1853년 펜실베이니아철도회사에 취직하였다. 1865년까지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침대차회사에 투자하여 큰 이익을 얻었으며 철도기재제조회사·운송회사 ·석유회사 등에도 투자하여 거액의 이윤을 얻었다.
1865년 철강 수요의 증대를 예견하여 철도회사를 사직하고 독자적으로 철강업을 경영하기 시작하여, 1872년 베서머제강법(베서머법)에 의한 미국 최초의 거대한 평로(平爐)를 가진 홈스테드제강소를 건설하였다. 1870년대부터 미국 산업계에 일기 시작한 기업합동의 붐을 타고, 피츠버그의 제강소를 중심으로 하는 석탄 ·철광석 ·광석 운반용 철도 ·선박 등에 걸치는 하나의 대철강 트러스트를 형성하였다.
1892년에는 카네기철강회사(뒤에 카네기회사로 개칭)를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철강 트러스트로서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였다. 1901년 카네기는 이 회사를 4억 4000만 파운드에 모건계(系)의 제강회사와 합병하여 미국 철강시장의 65 %를 지배하는 US스틸사를 탄생시켰다.
이 합병을 계기로 카네기는 실업계에서 은퇴하고, 교육과 문화사업에 몰두하였다. 카네기 공과대학(현 카네기멜론대학)·카네기교육진흥재단에 3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였다. 인간의 일생을 2기로 나누어, 전기에서는 부(富)를 축적하고, 후기에서는 축적된 부를 사회복지를 위하여 투자하여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를 실천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저서에 《승리의 민주주의 Triumphant Democracy》(1886) 《사업의 왕국 The Empire of Business》(1902) 《오늘의 문제 Problems of Today》(1908)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