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상층부가 솔선수범하는 것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 한다.
프랑스어에서 파생한 이 말은 '고귀한 신분에 따른 윤리적 의무'를 뜻한다.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일반계층은 그들의 지도를 따르지 않게 되고 사회는 더이상 효과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지도층은 또한 상류층이므로 그 사회에서 가장 혜택받는 계층이다. 따라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혜택에 수반되는 의무이자 필연적 비용이다.
[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시작 ]
초기 로마의 왕과 귀족들은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과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포에니 전쟁 때에는 전쟁세를 신설, 재산이 많은 원로원들이 더 많은 세금 부담을 감수했다.
그들은 제일 먼저 기부를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레에 돈을 싣고 국고에 갖다 바쳤다.
이것을 본 평민들도 앞다퉈 세금을 내게 됐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전시국채를 발행, 유산계급과 원로원 의원 및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만 구입토록 했다.
평민들에겐 전비 부담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또 그들은 평민들보다 먼저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당시 귀족들의 전시사망률은 평민들의 그것에 비해 훨씬 높았다.
로마의 귀족들은 돈 뿐아니라 피를 흘리는데도 앞장섰던 것이다.
따라서 평민들도 전쟁터에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데 주저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으며
이것이 로마군이 용맹함으로 유명한 이유이다.
이런 로마에 대해 돈주고 산 용병따위로 대항한 카르타고는 아무리 한니발같은 명장이 있었어도 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필요성 ]
이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미덕은 중세와 근대 사회 에서도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표본으로 간주됐다.
사회가 혼란에 휩싸이면 대중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리며 소극적 자세를 취한다.이를 "방어적 퇴각"(Defensive Retreat)이라고 한다.
이에 지도층이 모범을 보이므로 해서, 대중을 이끌어야 사회는 혼란을 극복하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사회지도층 인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가 강조되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예 ]
멀리 중세까지 갈 것도 없이,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던 청년들의 3분의1 이상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것만 봐도 말이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왕실 앤드류 왕자가 조종사로 참전해서 커다란 화제를 불러모은 일이 있다.
또 오늘날 미국 몇몇 사립대학은 사회적 저명 인사들로부터의 기부금이 넘쳐나고 있다.
미국인들이 입양을 많이 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보면 이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대한 지도층의 입장 ]
상층 집단이 이런 의무와 덕목을 갖춰 왔던 것은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서구 상층은 과거 중세 귀족 신분으로 누려 왔던 특권들이 부분적으로 약화됐더라도 여전히 경제적 부의 상당 부분을 소유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상위 1% 집단이 전체 부의 30%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상층의 상층'이라 할 수 있는 1% 집단이 현대판 노블리스를 이루고 있다.
이 상층 집단은 단순히 경제적 부만이 아니라 교육과 연줄망에서 일반 국민과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다.
어느 나라이건 상층 집단은 유명 사립고교와 명문 대학에서 교육받아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해 왔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 집단 안에서 배우자를 찾는 통혼 전략을 통해 그 연줄망을 강화해 왔다.
경제적 부와 사회적 위세를 독점하는 만큼 이들은 이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상층 집단의 바람직한 태도이자 전략이다.
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윤리적 덕목과 부의 사회적 환원을 강조해 왔으며,
이것이 다름 아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을 이뤄 왔다.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대해서는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
한편에서 그것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상층 집단의 규범적 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상층 집단의 보수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비판되기도 한다.
[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한국 ]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급속한 산업화의 결과 현대식 상층 집단이 형성돼 왔다.
하지만 한국의 상층은 오히려 '오블리제 없는 노블레스', 즉 '의무를 망각한 신분 집단'에 가깝다.
우리 상층의 이런 특성은 무엇보다 화폐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식' 천민문화에 기인한다.
이 천민문화는 기실 `천민적 졸부'의 문화이며, 이들에게 오블리제란 경제적 낭비이자 사회적 과시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약간 냉소적인 시각일 수는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턴가 노블레스 오블리제는커녕 '오블리제 없는 노블레스'의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귀족들이 누릴 특권은 다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 서양 귀족들이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남한에 이주하려 할 판이다.
피는 안 흘려도 되고, 금전적인 특권과 사회적 권위를 다 누릴 수 있다면 이거야 말로 금상첨화다.
물론 우리나라에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경주 최부자집이나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것이 조선과 근대 대한민국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 소수 몇 명의 지도층이라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다만 최근 기부 활동을 포함해 상층 집단 일부에서 부의 사회적 환원이 점차 늘어나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그것은 소박한 자선 행위를 넘어서서 재단 창립과 기부문화 정착 등으로 제도화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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