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의 한시 답설야중거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 내린 들판을 밞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
서산대사 휴정스님이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입니다.
일찍이 1948년 남북협상 길에 나선 백범 김구 선생이 38선을 넘을 때,
이 시를 읊으며
"내가 이번에 38선을 넘는 것을 어리석고,
무분별하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한다고
사람들은 말을 하지만 난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항상 책임을 질 줄 안다."고 하셨답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나중에 반드시 나의 행적을 평가할 날이 올 때가 있다."라고....
자신의 의지와 각오를 다졌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김구 선생은 이 구절을 즐겨 써서 경계로 삼았으므로,
김구 선생의 필적에도 이 구절을 쓴 작품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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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의 친필]
서산대사 휴정(1520~1604)
1520년 평안도 안주에서 완주 최씨인 아버지 최세창 어머니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9살때 어머니가 죽고 그 다음해인 열살때 아버지마저 죽자
안주목사 이사증(李思曾)이 그를 서울로 데려와 성균관에 넣고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김씨가 그를 임신하기 전해에 꿈에서 스님이 나타나 임신했다고
축하하는 꿈을 꾸고는 이듬해 3월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그가 세살되던해 초파일날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절에 갔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서 꼬마 스님을 뵈러 왔다고 하면서 서산대사를 안고
몇마디 주문을 외우며 쓰다듬어준 후 아이의 이름을 운학(雲鶴)이라고
지으라 하여 그때부터 아명을 운학이라고 했다 한다.
그는 본명은 여신(汝信)이고 어렸을때의 이름은 스님이 지어준대로
운학(雲鶴)이라 했으며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이다.
별호는 여러개로서 백화도인, 서산대사, 풍악산인, 묘향산인, 두류산인,
曹溪退隱, 病老 등이고 법명이 휴정(休靜)이다.
그는 1540년 중종35년 수계사 일선, 중계사 석희,육공, 각원,
전법사 영관 스님을 모시고 수계를 받았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에 격문을 돌려 각처의 승려들이 일어나 승병을 조직하여 싸웠으며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나이 85세 법랍 67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그가 입적한 뒤 21일동안 방 안에서 기이한 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그는 선조대왕으로부터 "國一都 大禪師 禪敎都總攝 扶宗樹敎 普濟登階尊者 "
(국일도 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교존자) 라는 최고의 존칭을
하시받았다. 저서로 청허당집(淸虛堂集,4권2책),
심법요초(心法要抄),선교결(禪敎訣) 등이있다.